제 4 호 혹시 분데스리가…아세요?
혹시 분데스리가…아세요? 202110483@sangmyung.kr 정기자 양현준 “손흥민이 혼자서 경기를 끝내러 달려갑니다. 손흥민! 대한민국이 2대0으로 앞서갑니다. 손흥민이 오프사이드였는지에 대한 VAR 판독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별 상관없습니다. 독일이 월드컵에서 탈락합니다. 톡 차넣으면서, 비록 대한민국은 16강 명단에 적히지 못하게 됐지만, 대신 역사책에 적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떨어뜨린 최초의 팀으로 말입니다.” -BBC 스포츠 해설가 조나단 마크 피어스(Jonathan Mark Pearce)- 카잔의 기적. 대한민국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2대0으로 이긴 경기를 흔히 지칭하는 말이다. 이 경기승리 시 때에 따라서는 16강 진출이 가능했기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전 국민이 이 경기를 숨죽여 보았고, 결국 전 국민을 열광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은 이 경기 패배로 첫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오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외국 베팅업체인 스포츠베팅다임닷컴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직후, 역대 월드컵 최대 이변 TOP 5를 소개하였는데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TOP 3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독일은 FIFA 월드컵 우승 횟수 2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횟수 1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독일은 축구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축구에 진심인 나라이다. 그에 걸맞게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 역시 유럽 프로축구 5대 리그 중 하나에 들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와 명성을 지니고 있다. BUNDESLIGA 분데스리가 분데스리가는 독일의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이다. 분데스리가라는 말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스포츠 리그를 일컫기 때문에 핸드볼, 야구, 배구, 농구, 하키, 럭비 등에도 분데스리가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분데스리가 하면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를 많이 떠올린다. 분데스리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많은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차범근, 손흥민, 차두리, 구자철 등 정말 많은 선수가 분데스리가를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타 유럽 리그에 비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분데스리가의 특징에 있다. 우선, 분데스리가는 외국인 등록 규정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느슨하다. 분데스리가의 선수등록 규정은 독일에서 21세 이전 3년간 훈련 받은 선수가 최소 12명이 필요하다. 이를 홈그로운 제도라고 한다. 같은 홈그로운 제도를 두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잉글랜드 혹은 웨일스에서 21세 전에 3년간 훈련 받은 선수가 최소 8명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살펴보았을 때는 분데스리가가 규정이 더 빡빡하지 않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 선수단 등록은 제한이 없는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선수단 등록 가능 선수가 최대 25명으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타 리그 대비 다양한 선수를 영입하는데 거리낌이 덜하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좋은 활약을 하였다는 점이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UEFA컵 우승(현 UEFA 유로파리그)을 주축으로 이끈 차범근, ‘함부르크 SV’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손흥민, ‘VfL 볼프스부르크'와 ‘FSV 마인츠 05’ 그리고 ‘FC 아우크스부르크'까지 선수 생활 대부분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뛴 구자철까지 많은 우리나라 축구선수의 좋은 활약으로 좋은 선례를 남김과 더불어 카잔의 기적 등 독일인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이 이적시장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분데스리가 이적설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양날의 검, 분데스리가의 50+1 제도 아랍에미리트 국부 자본이 투입된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 승점 100점 우승에 빛나는 ‘맨체스터 시티FC’. 브라질의 네이마르(Neymar da Silva Santos Júnior),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Kylian Sanmi Mbappe Lottin)를 각각 2,987억 원, 1,947억 원을 지불하여 데려와 역대 이적료 1위와 2위를 갈아치우며 어마어마한 카타르 자본을 과시한 ‘파리 생제르맹 FC’. 대부분의 축구 리그, 그중 최상위 수준의 축구 리그들은 구단주의 자본을 기반으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시민구단 형태로 팀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존재한다. 시민구단이란 특정한 기업이나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연고지 기반으로 시민들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여 구단을 운영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는 50+1이라는 다른 리그에는 없는 제도가 존재한다. 50+1 제도란 비상업적 비영리 단체가 51% 이상의 구단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자면 구단 자체나 구단 팬들이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 기업 출자로 설립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VfL 볼프스부르크’ 그리고 20년간 꾸준히 특정 자본의 지원을 받은 ‘TSG 1899 호펜하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민구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구단 자체나 구단 팬들이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근본적으로 자국 리그가 상업적인 측면보다는 자국 축구 팬들을 위한 축구로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최대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이 50%가 되지 않기에 시민들이 구단주가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비리가 적고 재정이 비교적 투명하고 건전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꼽을 수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특정 거대 자본의 손길을 거부하고 다양한 스폰서 유치를 통해 구단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또한 주요 선수를 비싼 값으로 처분함과 동시에 그 빈자리를 대체할 선수 영입에 큰돈을 쏟아붓지 않고 스카우트 시스템으로 싼값에 데려오는 좋은 영입을 여럿 성사하는 기조를 띄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성적까지 뒷받침되며 구단의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부채보다 순이익이 훨씬 많은 흑자 경영을 지속하는 중이라, 유럽 전체를 놓고 봐도 올바른 구단 운영모델로 손꼽힌다. 축구를 금전적인 이득만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삼지 않기에 구단 자체가 축구와 그 팬들로 이루어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러한 점이 무수한 자본이 투입되는 다른 리그와 다르게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자부심마저 엿볼 수 있어서 정말 매력적인 리그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장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면 단점 역시 눈에 띄게 존재한다. 바로 리그의 수준 하락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12/13 시즌부터 21/22 시즌까지 무려 10년 연속으로 ‘FC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FC 바이에른 뮌헨’을 견제할 수 있는 팀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상위권 순위 역시 굳어지어 가고 있다. ‘FC 바이에른 뮌헨’은 곧 리그 우승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리그 우승을 원하는 좋은 선수들은 ‘FC 바이에른 뮌헨’ 외의 다른 분데스리가 팀의 이적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유망주, 라이벌 팀의 주축 선수 등이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거나 다른 리그로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구단들이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점도 한몫한다. 이러한 상황은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기존에 좋은 활약을 하던 선수의 대체자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 성적 하락은 자연스레 따라오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팀에 많은 스폰서를 유치하긴 힘들다. 점점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독일 구단들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하고는 좋은 성적을 거의 거두지 못한다. 이를 해결할 방안은 앞서 언급한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와 같이 해외의 거대 자본이 들어와 과감한 투자로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최선이다. 현시점에서는 과거와 달리 점점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본, 즉, 돈이 몰리는 곳에 선수들이 몰리고, 선수들이 몰리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중위권의 팀도 타 유럽 5대 리그의 주요 클럽만큼이나 돈을 지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는 어쩌면 단순히 구단이 키워내는 유망주에만 팀의 명운을 걸기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닐까? 그렇다면 50+1 제도는 폐지돼야 할까? 50+1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은 대부분 글로벌 팬인 경우가 많다. 현지 팬들은 찬성하는 입장이 강하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분데스리가는 50+1 제도 덕분에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경기장 입장티켓 가격 방어가 잘 되어가고 있다. 많은 자본이 몰리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비교하면 정말 큰 가격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에서 TV로 보는 글로벌 팬과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분데스리가의 평균 관중 수는 4만 5천 명으로 전 세계 스포츠를 다 합치더라도 NFL에 이어 2번째 높은 수치이다. 하부 리그 경기도 많은 관중 동원력을 보이는 것은 돈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거대 자본의 투입이 항상 성공의 길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파르마 칼초 1913’의 경우 지 잠피에트로 마넨티에게 구단을 판매하였는데 알고 보니 돈세탁과 횡령을 목적을 인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4부 리그로 강등당한 사례도 있다. 또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단 상품 및 티켓, 이적과 재계약 금지 조치가 취해지면서 어려움에 빠진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재판매를 목적으로 구단을 인수하고 구단을 어려움에 빠지게 만든 사례 역시 꽤 존재한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팬이 없다면 스포츠 경기는 그저 공놀이에 불가하다. 이는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스포츠에 있어 팬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50+1 제도만큼 팬들에게 힘을 실어 줄 만한 제도는 없다. 독일은 상위리그, 하위 리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태어난 곳, 아니면 의미가 있었던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축구로 연대감을 느끼며, 축구를 가장 재밌게 즐기는 민족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50+1 제도는 수년이 지나도 독일 분데스리가만이 가진 특별한 제도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수한 자본이 쏟아지는 현재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제도이기 때문에 굳이 새롭게 채택 할 이유는 없다. 흐름에 맞지 않는 제도이기에 독일 분데스리가 발전에 있어 큰 장애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구단과 팬 사이 단단한 연대감을 가진 독일 분데스리가의 팬들은 자본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앞서 언급한 50+1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여 결속된다면 수십년이 지난 후엔 독일 분데스리가가 각광받을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현민(2022), 분데스리가에만 있는 규정 50+1, 의미와 미래, 스포츠LAB, 2022. 03. 25., https://contents.premium.naver.com/sclass/slab/contents/220325230032094Lf PREPO football, [한글자막] 한국 vs 독일 레전드 경기! BBC 영국 현지 해설 반응, 2018. 09. 20., https://www.youtube.com/watch?v=yDkat1AEaec 메인사진 _ 분데스리가 로고 _ https://www.bundesliga.com/de/bundesliga
제 4 호 범죄자들의 무기: 심신미약(心神微弱)
범죄자들의 무기: 심신미약(心神微弱) 202210316@sangmyung.kr 정기자 정지은 심신미약(心神微弱), 사전에 따르면 마음이나 정신 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 시대가 지날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였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점점 더 악랄한 수법으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범죄 사건들만 생각해 보더라도 아무런 이유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이러한 범죄가 분명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다. 일명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범죄 처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SNS 속 사람들의 대화만 봐도 우리나라의 처벌에 대한, 특히나 심신장애라는 범죄자들의 히든카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몇몇 사례들은 우리들의 분노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심신장애는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나뉜다.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사라져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잃었다면 심신상실, 이것이 미약한 상태면 심신미약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하여 실제 법 조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제10조 제1항에서의 ‘사물’이란 일과 물건을 의미하고, 이러한 사물을 ‘변별한다’는 것은 구분하고 판단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인식에 따른 사건에 대한 판단능력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심신미약 판단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범행 당시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과 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심신미약의 인정 여부가 형을 감면하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심신장애가 없는 범죄자가 처벌을 아예 받지 않는 심신상실을 주장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심신미약이라고 우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때 범죄자의 심신미약 인정 여부는 의사의 의학적인 판단이 아니라 판사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 피고인이 범죄 당시 판단력과 의사 결정 능력이 얼마나 흐렸는지를 결과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판사라는 것이다. 심신미약의 가장 큰 문제, 주취 감형 문제는 너무나 당연시하게 범죄자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법원에서 너무나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자들이 심신미약을 무기로 가장 많이 악용하는 주장은 가해자가 음주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과 가해자가 평소에도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일상생활도 힘들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신미약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사회적인 분노를 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들의 형벌을 감형해 준다는 이유만 아니라 음주 후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한테까지 법원의 판결이 관대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음주 후 저지른 범죄가 심신미약으로 감형 가능하다는 것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심신장애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만취를 이유로 범행 당시 심신미약이었다고 주장하는 범죄자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마신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형법 제3항에 따라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심신미약 감형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하여” 음주를 통해 범죄를 저지를 것에는 분명 정당한 형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불분명해져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스스로 술을 마시고는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억지이다. 심신미약에 대한 다른 나라의 태도 그렇다면 해외는 주취 감형을 포함한 심신장애에 대해 어떠한 입장일까. 프랑스는 음주로 인한 폭행,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도 만취 범죄에는 가중 처벌을 선고한다. 특히, 뉴스를 통해 미국 범죄자들의 징역이 몇백 년씩 내려진 사건들을 보고는 ‘우리나라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며 한탄한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영미법을 기반에 두며, ‘법원의 판례가 곧 법’인 실제 판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과거에 내린 판결들이 법과 같은 구속력을 지니며 비슷한 사건이 판결의 예시가 되어 영향을 준다. 범죄자에게 적용되는 모든 죄를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100년, 200년 혹은 1000년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고등법원은 4년간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르네 로페즈씨에게 징역 1천 503년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원칙으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천부인권'이 원칙이면 범죄자를 교화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우리나라는 법전에 쓰여 있는 법에 근거하여 판결하기 때문에 미국의 사례보다는 비교적 해석의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장 무거운 죄의 형량을 기반1으로 다른 죄들을 가중해서 형량을 결정짓기에 낮은 형량이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가 애초에 강력한 처벌로 인한 보복의 의미가 아니라 교화를 통한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인권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러 논란에도 심신미약의 감형 폐지가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어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자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발적 범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일반 범죄자와 동일하게 취급해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심신미약자가 될 수 있겠다 조두순은 지난해에 출소해 피해자가 사는 경기 안산으로 돌아갈 것이 알려지며 크게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상해치사, 아동 성범죄, 성폭행 등의 중범죄 전과 18범인 조두순이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으로 고작 징역 12년형만 선고받아 많은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심신미약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재판에서 법원은 “조두순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으며,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질러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감형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시대가 변해도, 사회 인식이 변해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2016년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에서도 피의자가 조현병으로 인해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며 감형해 주었고, 2018년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에서는 피의자가 감형을 노리고 우울증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분노를 일었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심신미약을 악용하여 자신이 받아야 마땅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나쁜 선택권이 주어진다. 실제 어느 형벌 체계를 선택할지는 그 나라의 법체계 및 사회적인 요소 등을 다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 이를 잘 고려하여 소외되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법체계를 확실히 하고 죄에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정직한 세상이 찾아오기 위해선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 범죄자를 법에 따라 판결하여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국가는 범죄자를 예방하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범죄자가 일반인인지, 심신미약자인지, 심신상실자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선 ‘범죄’ 자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대한민국 법체계에 대해 심신미약에 대한 형법을 아예 폐지하기보다는 판사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감형이 가능한 ‘심신미약 상태’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신미약에 해당하는 모든 사례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정하고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 가능하도록, 그 판단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심신미약’에 대한 감형 기준을 명확히 하여 계속해 만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따른 마땅한 벌을 받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그러한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1) 만약 가중이 필요하다면 형법에서 명시된 경우에만 가중 처벌이 가능하기에 살인을 비롯한 다른 범죄를 행했다면 이는 모두 살인죄로 흡수되어 살인죄의 형량만 받게 된다. 조두순이 받은 ‘심신미약’ 감형,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77393&ref=A> 심신미약 감형 의무조항은 폐지돼야, 경북도민일보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1706> 국가법령정보센터_형법 제10조 <https://www.law.go.kr/%EB%B2%95%EB%A0%B9/%ED%98%95%EB%B2%9 메인사진 _ https://pixabay.com/photos/hammer-libra-dish-justice-law-802296/
제 4 호 걸어서 애니속으로
걸어서 애니속으로 202110353@sangmyung.kr 정기자 송지민 여러분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제 여가의 대부분을 애니메이션을 보는 데에 쏟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진심이랍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요. 지브리스튜디오의 몽글몽글한 감성은 세대를 막론하고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실사와 같지만, 회화 작품들을 보는 듯한 그림체들은 마치 주인공들이 실제로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처럼 지브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영화마다 큰 기대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만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따지고 보았을 땐, 미국의 월트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죠.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영화가 아닌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덕분인데요. 순정물부터 학원물, 판타지 그리고 SF 등 다양한 장르를 불문하고 애니메이션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특히 이세계를 다루는 액션 장르 애니메이션들을 볼 때면, 애니메이션 분야로는 일본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어떻게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기술이 부족한 것도, 타겟층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기존의 서양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법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내보였습니다. 과거, 미국의 월트 디즈니의 경우,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1초에 24장의 그림을 넣어 만드는 '풀 프레임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그러한 기법에서 제작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리미티드 기법'을 창안하여 사용하게 되는데요. 이는 1초에 10장 이하의 그림을 이어 붙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법으로, 기존에 사용했던 장면을 재사용 함으로써 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매회 변신하거나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배경만 바꾸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제작 시간과 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25분간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주 1회마다 방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구조를 들여다보면 일본이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철저한 '타겟 마케팅'으로 상품에 가장 적합한 판매 소비자층을 설정하여, 제품 자체에 차별화를 두어 경쟁력을 갖추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인층에 인기가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실생활에서도 쓸 수 있는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 소비를 끌어내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마케팅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산업으로 존재하게 되어, 기획에서 마케팅까지 수만 명의 인력들을 보유하게 되었는데요. 그렇기에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굿즈에 관련한 많은 콘텐츠와 홍보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일본은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의 규모도 크고, 또 그 안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에 일반 애니메이션 회사들과의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에 기술적인 측면과 산업구조만을 이유로 들 순 없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이야기'를 중시했습니다. 이는, 앞서 말했던 일본의 특수한 '리미티드 기법'의 사용과 관련이 있는데요.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1초당 들어가는 그림의 수가 현저히 적었습니다. 캐릭터 간의 대화 시, 캐릭터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입만 움직이거나, 액션 장면에서는 캐릭터들은 가만히 있고 배경의 강조선만 움직이는 등의 연출을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둔탁했으며, 매회 동일한 패턴의 반복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패턴화에 차별화를 두고자, 작품 속 '이야기'에 집중하여 애니메이션 안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기사를 작성하면서 왜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본만큼 커지지 못했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타겟층은 주로 어린아이들에 머물러 있고,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는 채널도 극히 적으며, 주로 재방송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소비하는 계층은 어린애들이 아닌 성인들일 텐데 말이죠. 따라서 애니메이션의 타겟층을 보다 넓히고, 방영 채널의 가짓수를 늘려 '타겟 마켓팅'을 실시한다면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메인사진 _ 넷플릭스 화면 캡처
제 4 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서로 다른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의 결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서로 다른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의 결과 정기자 201710846@sangmyung.kr 임 지 혁 “페레스트로이카는 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해, 인민에 의해, 인민을 위해 실현되는 완전한 혁명적 과정이다.” 1990년에 출간된 자하 교지 23호에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перестро?йка, 개혁)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이는 당시 소련의 개혁, 개방 정책에 대해서 다룬 것이었다. 아직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자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개혁하며 그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었다. 기사는 그 말미에 ‘페레스트로이카의 결론은 고르바초프의 실천의 결과에 있을 것’이라며 마무리를 지었는데 과연 실천의 결과에 따른 것일까, 아니면 저자가 예상하지 못했을 결과인 것일까, 그리고서 몇 년 뒤에 소련은 완전히 분해되었다.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연방은 이제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십 수개의 나라로 쪼개졌다. [그림 1 : 세계지도] 러시아는 유럽에 속할까, 아니면 아시아1에 속할까? 아마 다들 먼 옛날 언젯적에는 세계지도 위에 광활하게 펼쳐진 러시아의 지도를 보고는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러시아는 유럽일까 아니면 아시아일까? 일반적으로는 러시아 서쪽에 위치한 우랄산맥을 경계로 하여서 그 왼쪽은 유럽, 그 오른쪽은 아시아로 구분한다는 지리학적인 답변을 듣고는 흡족하게 간식을 먹으러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가 심사숙고 끝에 던졌을 저 의문은 소련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매우 좋은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러시아는, 혹은 소련은, 그리고 그 구성국들은 유럽 문화에 속하였을까 아니면 아시아 문화에 속하였을까? 그 중요한 논제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 그 곳의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먼 옛날 지금의 우크라이나 부근에 살던 사람들은 키예프(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중심으로 국가를 만들고, 주변 세력들, 특히 동로마와 많은 접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당초 로마에게 ‘비스와강의 웨네티 종족(Vistula Veneti)’이라고 불리면서 이민족 취급을 받았지만 점차 세력을 키우면서 동로마제국과 사돈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이 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정교회(동방교회)를 믿고, 동로마의 문양에서 차용한 쌍두 독수리 문장은 오늘날 러시아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동로마, 즉 동방의 기독교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들은 동방(Oriental)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13세기에는 모스크바로 중심지를 옮긴다.2 이렇게 건설된 나라를 모스크바 공국이라고 부르는데, 이 도시는 머지않아 동로마의 뒤를 이은 동방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소련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곳이었다. 모스크바는 소비에트 연방의 중심지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옛날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모스크바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원래 동방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건설한 도시였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다소 다른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는 곧 그들의 서구성을 대표하는 곳이다. 1682년 러시아의 황제인 차르에 즉위한 표트르 1세는 러시아의 근대화, 서구화를 제창하면서 통치 체계를 개편하고, 문자와 생활 양식, 그리고 심지어는 수염 길이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1708년에는 마찬가지로 차르가 주도하여서 원래 늪지대였던 곳에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새로운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서구화의 상징적인 도시임과 동시에 러시아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기를 원했다. 마침내 171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완전히 수도를 옮기었고, 러시아는 이제 당당히 서구의 일원이 되었다. 다시 한번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러시아는 유럽일까, 아니면 아시아일까? 러시아는 처음에는 동방으로서의 정체성, 즉 아시아의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차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서방으로서의 정체성을 필요로 했고, 결국 유럽의 정체성을 추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근대화는 완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령 프랑스가 1318년에 실시한 농노해방령은 러시아에서는 1861년에야 발표되며 550여년이나 늦게야 농노제를 폐지한다. 차르는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자신의 고유적인 정체성과 혼란을 겪었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이러한 혼란을 봉합한 시도로서 평가할 수 있다. 공산주의의 초기 이념 가운데 하나인 인터내셔널(국제주의)은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한 국제적인 연대를 강조하면서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했다. 다시말해 동방도 서방도 아닌 새로운 그들만의 가치관을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1941년에 2차세계대전, 혹은 대조국전쟁을 겪으면서 마침내 동구권이라는 정체성을 정립했다. 그러나 동구권의 정체성은 영원할 수 없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등 그들과 대척점에 선 서구권과 매우 큰 갈등을 빚기도 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소련의 정책적 실패는 동구권 그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결론적으로 이러한 한계점들을 해소하고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시도였다. 고르바초프는 개혁 과정을 통해서 소련에 서구권의 기본 이념들-가령 정보의 공개성, 시장경제의 도입, 민주화 등-을 소련에 보급하려 했으며 이는 서방과 동방, 서구와 동구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그 중용을 찾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림 2 : 소련 지도 (Ssolbergj,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결국 실패했고 이제는 소련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구와 동구의 구분은 이제 사라졌고, 대신 서방과 동방의 대립 구도가 다시 세상에 펼쳐졌다. 그리고 옛 소련을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축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그 대립구도에 위치한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길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는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이후 NATO나 EU 등 서방과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협력을 강화해 나갔다. 반면 러시아는 동방의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친 서방 정책이 러시아의 이익에 반대된다고 판단하여서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이후로도 우크라이나의 내전에 간섭하고, 2022년 2월부터는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 지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는 아마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국경을 맞대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국경선을 경계로 서로 다른 모습의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쪽은 군사 부분을 필두로 하여서 전후 복구 과정에서 수많은 서방의 제도와 문화들이 유입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는 어쩌면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근대화와 서구화의 상징적인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다. 반면 러시아는 사뭇 다른 풍경이 보일 것이다. 러시아의 대통령궁인 크렘린의 성벽이 더더욱 두터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두 나라의 결정 또한 일종의 페레스트로이카일 것이다. 소련이라는 타협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서, 러시아는 동방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정한다. 러시아제국과 소련을 거치며 오랜 세월동안 내재하던 갈등을 이렇게 상반된 두 나라로서 분리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1990년의 자하 교지 기사의 말미와 같이 그들의 실천의 결과를 기다린다. 33년 전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는 아마도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부디 작년에 타계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처럼 실패하지 않기를, 소련의 혁명가였던 트로츠키의 말 따라 그 땅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그런 시대가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1 근동(Orient)으로서의 아시아 2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키예프가 점령된 것이 그 원인이다. [참고자료] 김광동.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사회주의의 개혁". 상명대학교자하교지편집위원회 자하 23호 (1990): 40-52. 메인사진 _ 작가@wirestock https://www.freepik.com/free-photo/illustration-flags-ukraine-russia-separated-by-crack-conflict-comparison_29132493.htm#query=Russia%20Ukraine&position=4&from_view=search&track=ais
제 4 호 대만은 일본에게 친구(親舊)인가, 을(乙)인가
대만은 일본에게 친구(親舊)인가, 을(乙)인가 202210058@sangmyung.kr 정기자 이소명 평소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딘가요?” 하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냉큼 “대만이요.”라고 대답한다. 대만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밌게 본 로맨스 영화들이 대만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 ‘청설’ 속 거리에서 먹지만 든든해 보이는 고기 도시락이라던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볼 수 있는 따스하고 포근해 보이는 길거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그저 그런 소망이다. 나의 이런 단순한 대만 사랑을 알게 된 어머니가 하루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너 대만 역사는 제대로 알고 있니?” 이 질문 하나가 나의 뇌를 관통했고, 검색창에 ‘대만 역사’를 검색하게 했다. 대만과 중국에 대한 사실은 평소에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의 시선을 끈 건 대만이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사실에 검색창에 ‘대만 일본’을 자연스럽게 검색하였고, 현재에는 두 국가가 꽤 우호적인 듯한 헤드라인이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 일본-대만 반도체 동맹 본격화‥투자금도 '반반' - MBC 뉴스, 곽승규 기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22년 6월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서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였다. 연구개발센터의 투자금 역시 대만과 일본 두 국가가 반씩 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일본의 반도체 수요가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과 대만의 TSMC가 일본의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두 국가의 협력은 매우 매력적인 계약이다. 위 뉴스만 보아도 대만과 일본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지닌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만은 1895년부터 1945까지 50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 과거의 대한민국 역시 35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스포츠 경기의 한일전만 해도 모두가 손을 모아 승리를 기도한다. 그런데 대만과 한국은 똑같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으나, 명확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의문을 유발하는 차이가 필자를 글 쓰게 만들었다. 어쩌다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까? 현재 일본의 부속 섬인 오키나와는 1800년대 당시 ‘일본’과 분리된 ‘류큐’ 왕국이었다. 1871년 류큐 왕국 주민들은 태풍에 피항하고자 대만에 발을 들였다가 대만 원주민에 의해 류큐인 54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대만을 첫 번째 식민지 대상으로 삼고 있었기에 방법을 고안해 냈다. 우선 류큐를 먼저 침략하고, 대만 원주민에 의해 살해된 54명의 주민 역시 일본의 자국민이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이를 시행했고 ‘자국민 살해’라는 명분으로 대만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이로써 1895년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일본이 대만을 통치했던 방식은 대한제국 침략 당시의 방식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난다. 일본은 대만을 침략하고 2년 동안 자유롭게 대만을 떠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주었다. 대만은 이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이것이 싫다면 중국이나 다른 땅으로 떠날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식민 통치라는 이름에 비해 확실히 구속이 적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통치 방식뿐만 아니라 침략 당시 대만과 대한제국의 상황에도 차이가 존재했다. 대만은 왕이나 황제와 같은 통치자 개념이 부재했다.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왕조가 멸망했다는 원한이 있었으나 대만은 이러한 원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대만이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은 대한제국 국민들의 행했던 독립운동에 비해 확연하게 미비했다. 일본의 대만 침략 과정과 그 당시 상황만 보아도 대만의 현 태도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결정적으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중국에서는 내전이 발생하였는 이는 현 대만에 방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 내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두 당이 집권을 위해 내전을 벌이는데 이에 패전한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당은 대만에서 정부를 재건하기 위해 기존 대만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독재와 공포적인 통치로 국민들을 통제하고자 하였고, 이는 ‘대만 백색테러’로 이어진다. 대만에서는 약 30년간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민간인 약 20만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속해서 두 개의 외부 집단의 지배를 받은 대만인들은 상대적 비교를 하게 된다. “차라리 일본 통치 시절이 나았어.”라며 말이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국민당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타국에 아픔을 안겨준 것은 똑같다. 대만은 일본에 의해 발전이 되었지만, 이는 일본이 다른 나라로 쉽게 진출하고자 하는 경로이자 수탈의 수단이었다. 앞서 제시한 일본이 대만에 준 2년의 유예기간도 역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무력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가장 비통한 사실 중 하나인 위안부와 관련된 피해자에는 대만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대만 남성 역시 대한제국 남성과 같이 강제징집의 대상이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통제하는 황국신민화 정책 또한 대만에서 시행되었다. 대만어, 원주민 언어 사용을 통제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고 신사참배 역시 강요의 항목이었다. 일본에 대한 투쟁이 대한제국에 비해 적었던 것이지 대만이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1915년 민간 신앙 종교인 ‘시라이안’을 신봉하는 1,200여 명의 한족이 일본을 대상으로 투쟁한 시라이안 사건이 있다. 본 사건은 일본군에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약 한 달간 대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항복한 자는 물론이고 사건과 무관한 마을 주민들까지 학살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확한 수치 자료는 없으나, 아직도 대치 장소였던 타파니에는 수많은 유골이 발굴된다는 점에서 그 가혹함은 말로 이룰 수 없다. 1930년에는 일본 경관이 원주민 족장을 무시하며 발발한 우서 사건이 있었다. 일본 족장에게 원주민 족장이 포도주를 권유했고, 경관이 더럽다며 족장을 구타함으로 사건은 시작되었다. 원주민들은 일본인 100여 명을 살해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정부는 원주민 마을에 독가스를 살포하여 원주민 600여 명이 사망했다. 그 후에도 일본 정부는 원주민 200여 명을 집단 학살했다. 즉, 대한민국과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같은 고통을 겪은 것이다. 한 대만인은 말했다. “일본에 통치를 받았던 시절, 대만은 국가로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무력 통치 시절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수많은 대만인 중 한 명의 발언일지 모르지만,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대다수의 대만인은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대만교류협회(日本台灣交流協會)가 22년 1월에 대만인 20~80세 남녀 1,0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1년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 조사 결과 대만인들이 좋아하는 국가 1위로 일본(약 60%)이 차지했다. <사진1. 2021년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 대한민국의 국민인 필자로서는 대만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다. 일제강점기 시절 경복궁의 근정전의 시야를 가로막았던 조선 총독부는 해방 이후 1995년에 철거되었다. 해방 이후 철거까지 50년가량이 걸린 것인데 이마저도 왜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린 것인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대만총독부 건물은 여전히 대만 총통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 대만인은 말했다. “저는 일본을 싫어하지 않아요.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세계 평화는 제일 중요하잖아요.” 대만의 일본 사랑은 국민들 개개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조 과시까지 이어진다. 실제 22년 3월 대만 총통인 차이잉원과 당시 일본의 총리 아베는 공개적으로 화상회의를 진행하며 두 국가의 협력을 이야기했다. 이 회의에서 차이 총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신의 일처럼 여긴다며 대만과 일본이 교류 협력을 강화해 역내의 평화 안정을 촉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일방적 무력에 의한 주권 변경은 용납할 수 없다며 평화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준 일본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대만의 국민도, 대표도 ‘평화’를 언급하며 일본을 옹호했다. 현재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절정에 다다랐다. 22년 10월에 시행된 중국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시진핑의 발언대로 중국은 대만 침공을 위한 해안 무기 개발에 집념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운 중국의 봉쇄 정책은 대만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에 다른 강대국인 일본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이 해결책에는 단순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도 연결되어 있다. 타이완 전쟁 발발 시, 미국의 원조를 받는다면 대만과 가까운 땅인 일본의 지원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일본에는 미국의 함대도 주둔하고 있고, 미함대 출발 동시에 일본의 자위대도 함께 공조할 가능성까지 있다. 하지만 현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역사를 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대만이 과연 당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개 대학생인 필자가 ‘이런 방법도 있었는데.’라며 어쭙잖게 발언할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일개 대학생인 나도 아는 것이 있다. 비겁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의 근원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박혀있다. 출처도 불분명한 말임에도 많은 세계인들이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의 의미가 있고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이 명언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다 <참고 문헌> 김소연,“대만 전쟁 대비”…일본, 육·해·공 자위대 통합사령부 신설 추진,한겨레,2022.10.30.,<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64894.html> “대만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 유튜브 비디오, 6:12, 게시자 “딩글 dinggle”, 2019. 8. 16.,<https://www.youtube.com/watch?v=QNvICAAbdrc> 2021년대만인의일본에대한감정,일본대만교류협회(日本台灣交流協會),<https://www.koryu.or.jp/tw/> 연합뉴스,대만 차이잉원, 日 '막후실세' 아베와 화상대화…대중 공조 과시,2022.03.23.,<https://www.yna.co.kr/view/AKR20220323096400009> 이영희,“대만 침공 등 대비”…일본, 미군과 소통할 통합사령부 만든다,중앙일보,2022.10.31.,<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3464#home> 이장훈,TSMC 앞세운 대만의 질주, 올해 1인당 GDP 韓日 앞선다,주간동아,2022.10.31.,2022.10.31.,<https://weekly.donga.com/3/all/11/3729691/1> 현영준,바이든 "대만 침공 시 군사개입"‥일본 힘 키워 중국 대응,mbc 뉴스,2022.05.23.,<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71438_35744.html> 2021년대만인의일본에대한감정,일본대만교류협회(日本台灣交流協會),<https://www.koryu.or.jp/tw/> 메인사진 _ 蔡英文 Tsai Ing-wen,대만 총통 차이잉원 트위터,2022.03.22.,일본 총리 아베와 화상 대화를 나누는 대만 총통 차잉원의 모습,<https://twitter.com/iingwen/status/1506462361590194183?cxt=HHwWjoCjoanig-gpAAAA>
제 3 호 미국의 낙태죄 판결 뒤집기, 우리나라의 방향은?
미국의 낙태죄 판결 뒤집기, 우리나라의 방향은? 202010321@sangmyung.kr 편집장 주유라 당신에게는 자유롭게 피임할 권리가 있다. 신체의 주인은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권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은 벌을 받을 일인가? 그렇지 않다. 쾌락에 따른 형벌, 즉 섹스에 따른 책임을 묻는 논리는 신체의 주인이 지닌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논리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다. 여성은 인간이고,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2년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410 U.S. 113 (1973)) 판결이 뒤집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1973년 미국 전역의 임신 중단을 허용하도록 한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이다. 그러나 미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해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하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낙태를 제한하면 여성과 소녀들을 위험하게 몰아가 여러 합병증,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것”이라며 이러한 판결을 퇴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낙태죄 입법 논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의 판결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19년 4월 11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헌재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에서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고 판결했다. 이전까지 한국의 낙태죄는 66년간 존속되어왔다. 낙태죄로 불렸던 형법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하였다. 제270조 제1항 중 낙태 시술 의사에 관한 부분에 따르면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조항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담긴 낙태죄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2021년의 시작과 함께 효력을 잃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던 판결문인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은 낙태죄 조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의 유지ㆍ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 임신ㆍ출산ㆍ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ㆍ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ㆍ심리적ㆍ사회적ㆍ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2019년부터 2021년의 시작까지 낙태죄가 유효하였던 이유는 2년간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기 전까지 정부의 개입과 입법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이루어진 시점으로부터 약 3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낙태죄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아도 임신중절에 대한 공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고, 사람들이 임신중절을 위한 약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한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태가 3년째 지속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낙태와 관련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모자보건법이다. 모자보건법은 임신 중지 수술의 허용 범위를 제시한 법안이며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형법에서 낙태죄는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았지만, 모자보건법 상에서는 임신 중지 수술의 허용 범위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임신 중지 수술을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허용한다. ①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②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④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⑤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이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의 허용 범위를 충족하지 않은 그 밖의 임신중절을 한 경우에도 낙태에 대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자보건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고 남아 낙태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회는 형법 조항 수정을 위해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년째 낙태와 관련한 추가 입법은 없다.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관한 개정안 6건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대략 1만 997건이다. 입법 공백 상태가 길어진다는 것은 임신중절과 의료 현장 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음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의 판결은 트럼프가 집권하던 시기에 새롭게 미 대법원에 재판관이 자리를 잡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즉, 이 판결은 트럼프 보수정권에 의해 나타난 것이지, 미국 전체의 의견 또는 세계 흐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는 사회의 지배계층 또는 집권당의 이념, 사회적 상황, 종교 등과 면밀히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일례로 루마니아는 인구 증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피임과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출산 강요 정책을 펼쳤다. 1967년 이전에는 자유롭게 낙태가 이루어졌던 루마니아이지만, 차우셰스쿠의 정책인 포고령 770에 의해 임신한 여성은 모두 출산할 때까지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 ‘검은 시위’로 잘 알려진 폴란드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라가 파괴되어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이 필요했다. 나라의 존속을 위해 여성 인구가 필요했지만, 폴란드에서는 불법 낙태로 인해 1년에 6만 명의 여성이 사망하고 있었다. 여성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하여 죽지 않고 당장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폴란드에서 낙태는 1956년에 즉시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1993년부터 폴란드는 낙태가 다시 불법이 된다. 1993년까지 합법이던 낙태가 또다시 불법이 된 까닭은 공산 정권이 몰락하고 가톨릭 이념이 정치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에는 피임죄가 있었다. 가톨릭과 가부장제의 강한 압력에 의해 피임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현재 15~18세 여성에게 무료로 피임약을 지급하고, 임신중절 수술이 12주까지 합법이며 무료로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모습을 볼 때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이다. 피임과 낙태는 국가의 입맛에 따라 ‘금기’과 ‘허용’을 오고 간다. 국가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강력한 정치적 도구와 정치적 힘을 쥐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낙태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은 낙태가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일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임기 여성 중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 사람은 대략 5명 중 1명꼴이다. 2022년 6월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만 15∼49세 임신을 경험한 여성 3천519명 중 17.2%인 606명이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하였다. 만 15∼44세 응답자 가운데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2천362명)의 15.5%가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은 어떡하나요?’, ‘태아는 생명인가요, 아닌가요?’ 이러한 논의의 이면에는 쾌락적 성관계에 대한 징벌의 심리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0세기, 섹스를 통한 쾌락에 대해 죄를 매겨야 한다는 가톨릭 관념이 만들어낸 끔찍한 시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용소’이다. 이 시설에는 약 3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으며 “몸을 버린 여자들”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이곳에서 더럽혀진 몸의 죄를 씻어낸다는 명목으로 고된 노동을 하며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여성들은 섹스를 해서, 강간을 당해서, 아기를 낳아서, 너무 예뻐서 등의 이유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한다. ‘막달레나 수용소’는 여성의 쾌락에 대한 징벌의 심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놀랍게도 이 시설은 1765년에 세워져 1996년까지 존속되었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은 갓 스무 살이 넘은 여성의 방종을 부추기는 것인가? 낙태가 ‘방탕’한 ‘젊은 여성’의 무분별한 성관계를 부추긴다는 이미지 또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통계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은 미혼자보다 기혼자의 비율이 언제나 높기 때문이다. 임신 중단을 결정할 권리는 신체의 주인에게 있다. 인간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되고 새로운 입법과 의료보험 체계 마련 등의 과제를 앞둔 한국은 미국의 판결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함께 목소리를 내며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낙태는 결코 죄악시되어서는 안 된다.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고, 그럼에도 낙태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낙태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이며 인생에 대한 권리이다. 그러므로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의료 행위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우유니게(2018),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김영신(2022), 임신중절 줄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정부·국회 대체입법 손놔, 연합뉴스, 2022.06.30. <https://www.yna.co.kr/view/AKR20220630070900530?input=1195m> 나경희(2022), 지금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인가 합법인가, 시사in, 2022.06.2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593> 앰네스티 인터네셔널(2022), 낙태에 관한 주요 사실, 2022.08.08. <https://amnesty.or.kr/campaign/abortion-facts/?gclid=CjwKCAjw_ISWBhBkEiwAdqxb9s9goorBhx09yVm-tWT7zeOCk9S5_sDzzYlTrZ3vwNu61wIxaijirBoCtOcQAvD_BwE>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2022),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2019.04.11. <https://www.law.go.kr/detcInfoP.do?detcSeq=150780> BBC NEWS 코리아(2022), 로 대 웨이드: '낙태권 보장' 미국 대법원 판결 49년 만에 뒤집혀, 2022.06.25. <https://www.bbc.com/korean/news-61934454>
제 3 호 지하철 사이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간
지하철 사이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간 202210316@sangmyung.kr 수습기자 정지은 언젠가 한 번쯤은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불편함을 겪는 그들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서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알리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로, 작년 12월 출근 시간대, 5호선 왕십리역에서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넣어 열차 출입문이 닫히지 못하게 하며 시작된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이다. 이는 2022년 현재까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비정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시간대에 지하철 2호선, 4호선은 물론 다른 수도권 노선에서도 열차를 반복적으로 타고 내리며 열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3일에 한 번, 지하철 승차를 지연시키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을뿐더러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도 의견의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시위가 비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하여 본인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이기적인 수단이라고 말한다. 한편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표면적인 것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남의 일이라며 지켜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서로 타협점을 찾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2001년 한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중 추락하여 한 명은 중상을 입고, 한 명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초반에 국회, 기획재정부 등에 찾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지난 18년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총 17번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전장연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은 일상을 누리기를 희망하며 21년째 자신들의 불편함을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그들은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직접 보여주며 기본적인 이동권 획득과 예산 보장을 위해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는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은 불편을 야기하여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간대와 장소를 선택하였다. 시민들이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맞지만 전장연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불편을 알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전장연은 기획재정부 건물 앞에서 87일간 시위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지하철 시위와 비교했을 때 그들을 향한 관심은 현저히 적었다. 그들의 선택은 어쩌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지하철을 점거하는 행위가 합법적인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과 사회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 더 미리 관심을 가졌다면 그들의 선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 지하철 시위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한 대학생 인식 조사’ 주제로 대학생들 대상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장애인 시위로 인해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대학생 중 59.5%가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40.5%는 불편함을 겪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장애인 시위 원인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라는 질문에는 75.7%가 알고 있다고 답했고, 13.5%는 모른다고 답했으며 나머지는 관심이 없다고 응답하였다. 지하철 시위로 불편함을 겪은 대학생들은 과반수이었고 시위 원인을 알고 있는 대학생들은 그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의 대다수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문제와 이에 대한 사회 구조적인 무관심을 지하철 시위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사회적 약자의 주장은 소음 없이 주목받지 못합니다. 지하철 시위 또한 언론과 시민의 관심을 얻기 위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대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최후의 수단과도 같은 시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시위 방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대학생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장애인이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최후의 선택지가 ‘시위’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공통된 입장을 밝혔다. 20년 전부터 꾸준히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호소해왔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생긴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시위 방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비장애인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시위 방식이 이해는 가지만 이유 없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이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옳다, 옳지 않다고 나누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 결론적으로 시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고,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았기에 옳지 않다고 결정하였습니다. ··· 그만큼 답답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였을까’라는 여론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시위하게 된 상황은 이해하나, 너무나 많은 비장애인이 피해를 받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전장연은 시위와 관련하여 “시민들께 무거운 마음으로 죄송함을 전한다.”라는 말과 함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기재부가 비용의 문제로 장애인 삶을 짓밟아왔던 사회적 배제와 격리와 감금에 의한 차별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정말 정부는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까. 정부는 지속된 시위로 인해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첫 번째 정책은 새로 들여오는 버스는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저상버스란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를 말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에 저상버스 보급률 수치는 전국에 28.4%이고 2022년 이를 늘리겠다고 한 바가 있다. 두 번째 정책은 장애인 콜택시 지원 제도이다. 장애인 콜택시는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승합차 또는 바우처 택시를 운행하여 교통약자에게 이동의 편의성을 제공하겠다는 서비스이다. 이 제도는 2006년부터 운행을 개시하여 운영 중인데 이를 더 활성화하고 콜택시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의 등장에도 시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앞서 통과된 법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상버스 제도가 도입됐다 하더라도 일부 신형 차종을 제외하고는 발판이 내려오는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며 발판의 고장도 잦은 편이라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수리는 버스회사의 책임이라 하지만 고장에 따른 불편은 오롯이 장애인의 몫이 되는 것이다. 또한, 버스 정류장에 불법 정차된 차나 높은 인도 턱과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경사판을 내리는 자리가 애매해 휠체어 이용이 불편하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저상버스의 휠체어 레일 리프트는 자동으로 작동하며 레일이 땅에 닿기까지 20초가 소요된다. 휠체어석에는 승객석이 펼쳐져 있어 기사가 승객석을 접고 안전장치를 고정해야 휠체어를 놓고 탈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버스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이용률이 저조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 콜택시는 대기시간만 1시간일 뿐만 아니라 도의 시군, 광역·특별시 단위마다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교통수단 이용에 있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비교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외치는 움직임을 무조건 비판하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장애인 혐오, 그들이 비판받는 것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저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하였을까’라는 사회적인 여론보다는 혐오와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설문조사 중에 있던 내용 중에 있던 한 의견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온라인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온라인에서는 사회적으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의 무리가 암묵적으로 만들어져 서로 혐오하고 비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 구도까지 보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가 장애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감정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변하였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사회적인 반응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로 인해 많은 시민이 불편함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위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더라도 이것이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 불편해하는 시민들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시간과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를 위해 한 노력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는 그들의 판단이겠지만 이번 시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유연한 방식의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지하철에서 흘러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간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의 생존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감히 그들의 생각을 단정 짓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좌절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자신들의 삶을 자책하고 돌아봤을 그 시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비장애인에게는 그저 편리함을 위한 일상의 한 부분 일진 모르겠지만, 장애인에게는 편리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방문하는 곳임에도 불편함을 겪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다른 누군가는 그러한 현대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불편함과 함께 ‘느리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그 누구라도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인천교통공사(2020), 교통약자에게 이동의 편의를, 인천교통공사 블로그, 2020.07.07., <https://blog.naver.com/iammetro/222023504813> betterdaegu(2020), 함께 바라보는 세상: 체험과 공감]저상버스의 불편한 진실, 대구광역시 장애공감 서포터즈 블로그, 2020.10.23., <https://blog.naver.com/betterdaegu/222123999241> 이상현(2022), 전장연 지하철 4호선서 출근길 시위 예고...“시민께 죄송”, 매일경제, 2022.07.04.,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986248>
제 3 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정보 인식의 덫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정보 인식의 덫 202010189@sangmyung.kr 정기자 장아현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이다. 허공에 수많은 정보가 떠다니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 굳이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새롭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이의 손에 항시 들려있는 핸드폰이 곧 하나의 채널이 되어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것도 완전한 맞춤형 채널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많은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또 많은 정보를 접하는 만큼 그것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정보 인식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정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에게는 숱한 정보들 사이에서 인식의 오류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려면 먼저 어떻게 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정보 인식의 과정을 스스로 자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보 인식의 오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보 편식의 범인, 확증편향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등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이는 편향된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대체 어떠한 이유로 우리는 왜곡된 정보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일까? 바로 ‘개인화 알고리즘’ 사회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알고리즘에 둘러싸여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정보들을 제공받고 있다. 개별적인 데이터들을 수집하여, 이를 바탕으로 각 개인이 관심 있을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유튜브 영상 추천란과 소셜 커머스 추천 상품 등을 개인화 알고리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보를 찾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편리함과 함께 개인화 알고리즘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들 또한 생각해봐야만 한다. 특히 정보를 인식하는 과정에 있어서 말이다. 개인화 알고리즘을 통해 만난 정보는 제한성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정한 개인을 위해 선별된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인 주제를 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사에 최적화된 정보 제공은 정보 수용자의 시야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맞춤형 정보’라는 말 그대로 보고 싶은 것들만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에 갇히게 되는 것을 일명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한다. 필터버블이란 사용자가 온라인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거나 이를 강화하는 정보와 의견들만 접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개인에게 필터링된 정보 제공의 의존으로 인해 본인만의 거품에 가둬지게 되는 것이다. 필터버블 현상을 나 또한 경험한 바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부 활동을 하며 점심 방송 대본을 쓸 때였다. 점심 방송에는 시사 소식 몇 가지를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고,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이 요일별로 번갈아 가며 작성하였다. 그때 우리는 다른 친구들로부터 요일별로 시사 소식의 분야가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뉴스들이 제공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편파적으로 정보를 접하고 있던 것이다. 분명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전달할 시사 소식을 선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처럼 내 의견에 부합하는 정보만 지속적으로 제공받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접할 창구를 차단하는 것과 같으며, 결과적으로 확증편향을 지니게 한다는 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언제 어디든 개인화 알고리즘이 존재하고 있는 환경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의식 여부와 무관하게 사고체계 및 판단과정에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일반화 오류, 하나를 보면 열을 알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이는 ‘일반화’의 개념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문장이다. 정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을까? 일반화란 소량의 몇 가지 사례와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 및 태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몇 가지의 경험으로 그 전체의 속성을 섣불리 단정 짓는 데에서 생기는 오류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일반화 오류는 정보 인식 과정에서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이다. 우리가 일반화 오류에 취약한 이유는 패턴을 찾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몇 가지의 공통된 정보를 습득한 후에 이를 하나의 규칙으로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기존의 경험 및 정보에 입각하여 만들어낸 규칙으로 인해, 새로운 정보를 왜곡하여 습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외에도, 무조건적 전제에 근거한 ‘단순화의 오류’와 논리적 근거 없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근거 없는 비난의 오류’ 등의 인지과정에서의 오류가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범하는 것은 물론이며, 사회적 이슈를 뉴스에서 접할 때도 빈번히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와 같은 오류는 정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객관적 환경을 주관적으로 내재화시키는 것일뿐더러, 인간이 본인의 내적 인식 과정을 명확히 의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오류를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대표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축적한 표본들이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다수의 강남 학부모들이 정시 확대에 찬성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부모들은 정시 확대를 희망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대표성을 무시한 것과 같다. 이처럼 대표성이 없는 표본을 바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편향된 사고를 형성하는 지름길이 된다. 정보 인식의 오류 속에서 살아남기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며 정보와 지식 그 자체들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되었다. 정보를 창출하고 처리하고 공유 및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원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개념 확장은 정보의 양이 불어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주어진 이 기회를 우리는 잘 활용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다양한 정보들이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주었냐고 물으면, 그 누구도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 뉴스가 활발해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문제 제기되었던 가짜뉴스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으며, 현대인들은 각종 플랫폼에서 본인의 관심사 또는 성향에 부합하는 정보들만을 접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는 오히려 정보 인식 과정의 문제 환경을 조성했다면 한 것이지, 개선까지는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다. 현대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현상을 단면만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전체를 바라보며 논리 관계를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는 빅데이터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즉, 정보를 올바르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정보화 사회의 덫에 걸리게 된다. 정보 인식 과정에서의 오류가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나와 동떨어진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정보 인식 과정의 오류를 인지하였다면, 보다 정보를 새로운 시각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참고문헌> 박설민(2020), 편견 부추기는 AI의 ‘확증편향’, 개선될 수 있을까, 시사위크, 2020.10.21.,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491> 김남근(2019), 오류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SNS INSIDE, 2019.04.09., <http://www.snsinsid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7>
제 3 호 우리 모두의 전기
우리 모두의 전기 201710846@sangmyung.kr정기자 임지혁 참새들이 앉아있는 전선에 흐르는 전기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운영의 중추가 되는 나라의 것일 수도, 아니면 그것을 운영하는 어느 회사들의 것일 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들이 주인이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전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가지고 있으며 우리들의 현대 사회는 전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9월 15일의 순환정전 사태는 전면적인 대정전 사태가 아님에도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학계에서도 전력 소비를 분석하고 정전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필요가 있었을 지 되묻는 등 많은 연구가 있었다. 이는 전기의 공급이 단시간 끊기는 것 조차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전기에 대한 민영화 논의, 다시 말해 전기 시장에 대한 시장자유경제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비싸지는 밥값과 동결되는 전기 요금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말 그대로 월급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19의 영향 등 여러가지 것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단적으로 지금의 물가는 확실히 비싸다. 그 영향으로 인하여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한 번에 0.75%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물가와 금리 모두 상승세에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이며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기사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그래프: 소비자물가변동률과 전기요금변동률, 한국전력. 소비자물가변동률과 전기요금변동률. 한전 온라인지점. https://cyber.kepco.co.kr/ckepco/front/jsp/CY/H/C/CYHCHP00105.jsp. 2022.07.15. 기준] 이때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오르는 이 시대에 전기세(이하 전기요금)는 오르지 않는 것일까? 가령 국내 전기 발전의 주축은 여전히 화석 연료를 이용한 것인데, 가장 친숙한 화석연료인 주유소의 기름값은 이미 1년새 50% 가까이 상승하였다. 그러나 전기 요금은 이번 7월에야 4.3% 상승했을 뿐이다. 약 40년 간의 소비자 물가 변동률과 전기요금 변동률을 비교한 그래프를 살펴보면 전기요금은 대체로 소비자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았음을 살펴볼 수 있다. 수익성을 악화시킬,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그래프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기 산업의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전기의 역사 전기는 태초에 민영이었다. 백열전구로 유명한 토머스 에드슨(Thomas Alva Edison)의 회사는 뉴욕 멘허튼에 처음으로 전력 시스템을 설치했고 이 회사는 오늘날 GE라는 이름으로 전기 사업 분야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 혹은 주정부는 그것의 관리와 감독만을 행할 뿐 전기 산업의 주체적인 확장은 온전히 민영의 전력 회사의 몫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다소 결이 다르다. 한국에 전기가 도입된 것은 19세기 후반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 일행의 판단과 고종의 의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기 전등이 설치된 곳은 경복궁이었다. 이후 진고개(오늘날 명동 부근)에 전력망이 설치되며 민간에도 전기가 보급되는데 이를 시공한 회사는 대한제국 황실이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한성전기회사’이다. 이렇듯 처음부터 국가 주도의 성격이 강했던 한국의 전기 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전후복구에 이르기까지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으며 그 성격이 모호해진다. 4.19 혁명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장면 내각은 이러한 전력 시장에 개혁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당시 국내 전력망을 운영하던 전력3사를 통합하고 민영화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전력 회사들을 통합하여 공사 체계로 전환하여 완전 공영화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한국전력주식회사(이후 한국전력공사)가 설립되었고 국내 경제 개발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렇듯 전기 분야에서 공공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이 시급하게 근대화를 이루어야 했고, 이후에는 경제 성장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목적에 의하여서 한국의 전력 시장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인 목표에 부합하도록 운영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고도성장기가 끝나는 즈음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1980년대부터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한국은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맞이한다.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큰 이슈가 찾아왔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한국 사회는 자신의 경제 구조에 개편을 시도한다. 오늘날의 비정규직이 체계적으로 사회에 자리잡도록 하였고, 행정기관이던 철도청은 한국철도공사가 되었으며 공기업 한국통신은 KT로 민영화되었다. 한국 산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력거래소, 5개 발전자회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분사된 것이다. 전력 산업은 어느 정도 안정된 수준에 이르렀고, 한국 경제의 성장도 둔화되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한국의 전력 시장을 맡기는 것도 좋은 선택지일 수 있겠으나 다만 그 사이에 전기는 보편적인 복지 차원의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예전에는 여름철 전기세 폭탄의 주범이자 사치품이었던 에어컨은 이제 생활의 필수제가 되었고,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는 전기레인지도 가스레인지를 대체하는 추세에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의 한국 전력 시장은 낮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목표로서, 제한적으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하여서 운영하였다. [사진1 한반도 남한 밝고 북한 어두운 사진: 혹자는 경제 체계의 차이가 위 명암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선배 전기학도들의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NASA. The Koreas at Night., NASA Earth Observatory. Jan.30.2014.] 탄소 중립과 엉망인 경제 지금까지 한국의 전력 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적인 이익에 부합하도록 운영되었다. 만약 시대적 상황이 바뀐다면 목표에 부합하도록 얼마든지 정책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최근 인류는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유명한 1997년의 교토 의정서를 비롯하여 지구온난화, 환경 파괴 문제 등 지구 생태계 변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가령 옛날에 디젤 자동차는 연료 이외에 요소수를 넣을 필요가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배출 가스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요소수를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환경 위기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점이라는 인식 하에서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날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주안점은 바로 탄소 배출이다. 사실상 오늘날 인류의 모든 활동들은 탄소를 배출시키는데 그 중에서도 전기를 만드는 발전 분야의 탄소 배출량은 다소 비대하다. 2018년 국내 기준, 발전 분야 탄소 배출량은 총 2억6960만톤으로 전체 배출량의 37.1%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RE-100 등, 발전 분야의 친환경 정책은 (탄소 배출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를 실현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태양광 발전을 하기에는 햇볕이 지속적으로 강하게 내리는 이상적인 조건과는 거리가 멀고, 풍력 발전을 하기에는 (제주도 정도를 제외한다면) 바람이 일상적으로 강하게 불어오지 못한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돈이 안 되는’ 결과물을 유발하고는 한다. 그러나 한전은 공적인 목적을 가진 공기업이기에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 이러한 경제적이지 않은 업무를 달성해야만 한다. 놀랍게도 한전은 아주 약간의 요금 인상과 새로운 기술 개발 등을 통하여 기업으로서의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추어 나가려고 했다. 대략 2021년까지는,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다. 2020년 코로나 이후의 전 세계적 공급난,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그 즈음부터 시작된 세계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유가의 급등. 이러한 위기들이 종합되면서 2022년의 에너지 위기가 도래했다. 그리고 한전은 큰 적자를 기록한다. 한전이 방만했던 것일까? 그것이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신재생-탈원전 때문일까? 애초에 수명이 다 된 원전 이외에는 꾸준히 운용 중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의 시기이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기업이 위기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한전은 두 가지의 영수증을 받아들고 있다. 하나는 신재생 에너지 확충에 대한 영수증, 나머지 하나는 에너지 위기에 대한 영수증이다. 둘 모두 단기적인 문제라고 단언할 수 없으므로 한전 스스로는, 즉 지금과 같은 자산 매각으로는 이를 감당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자산 중에서는 한전의 장기적인 방향성을 위해 투자된 것이 상당수이므로 이는 장기적으로 에너지 분야에 악재이기도 하다. 결국 전기 요금을 인상하거나, 혹은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전기 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 탓에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므로 후자의 것이 현실성 높을 것이다. 만약 정부 차원에서 현 위기 속 에너지 기업들에게 지원 방침을 세운다면 어떨까? 아무래도 정부와 민간이 협동하여서 에너지 위기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전은 기존에 작성하였던 탄소중립의 로드맵을 따라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문 기사에서 누군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시장이 개편된다면, 즉 전기 시장에 대해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한다면 탄소중립, 에너지 위기 해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번 정부의 민영화의 주창자는 경영 효율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에 대해서 먼저 논증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 7월 6일, 전력공사(EDF)에 대한 국영화를 발표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주권을 보장하려는 조처”라고 한다.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 <참고문헌> “The Rise and Fall of Nikola Tesla and His Tower”, by Gilbert King, Smithsonian Magazine, Feb 3. 2014 “Edison vs. Westinghouse: A Shocking Rivalry”, by Gilbert King, Smithsonian Magazine, Oct 11. 2011 “The history of GE: From Thomas Edison to jet engines to being kicked out of the Dow”, by Aarthi Swaminathan, Yahoo Finance, Mar 23. 2019 "우리가 잘 몰랐던 전기의 역사 (1부)”, by GE Reports Korea, GE Reports Korea Newsletter, Dec 10. 2019 “[대한민국 제1호] 전기” by Sunghoon Lee, Chosun Ilbo, Feb 8. 2011 “국내 첫 전기발전소 터 경복궁 영훈당서 발굴”, by Hyeonwoo In, Hankook Ilbo, May 27. 2015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05). 한국문화사 p12~15.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Seik Park. (Aug 15, 2021).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쟁, 시대 앞선 천재들의 월드엑스포. Busan Ilbo JinA Chung. (2017). John Myon Chang Government's Economic Policy Initiative and The Five 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The Association For Korean Historical Studies, 176, 323-363.
제 3 호 상명대의 흡연 문화, 그 타협점을 찾아
상명대의 흡연 문화, 그 타협점을 찾아 202210058@sangmyung.kr 수습기자 이소명 “제발 금연 구역에서는 안 피면 좋겠다.” 상명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의견이다. 상명대학교의 흡연 문화가 어떻기에 이런 의견이 나왔을까? 학교 내 공식적으로 규정된 흡연 구역으로는 건물 옥상들과 대학본부 옆 흙 주차장에 위치한 흡연 부스가 있다. 하지만 흡연자들 사이에서 본래 금연 구역이지만 암묵적으로 흡연 구역으로 통용되는 장소들이 있다. 바로 자하관 앞, 에스컬레이터 입구 뒤편, 버스 정류장 뒤편, 생활예술관 화장실 길목 등이다. 이곳에서는 담배를 태우고 있는 흡연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흡연자들에는 단순 학생들만이 아닌 교직원들도 속해 있다. 그렇다면 상명대학교 학생들은 금연 구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상명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명대학교 흡연 구역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았다. 대학생 131명의 중복 답안 선택을 허용하여 상명대학교 내 공식적으로 허용된 흡연 구역을 모두 선택하도록 하여 총 208개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상명대학교 내 공식적으로 허용된 흡연 구역이 어디인지 묻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6개의 선택지를 구성하였다. 6개의 선택지 중 2개인 [‘건물 옥상들’, ‘대학본부 옆 주차장’]은 흡연 가능 구역이며, 나머지 4개의 선택지인 [‘자하관 입구’, ‘에스컬레이터 입구’, ‘생활예술관 화장실’, ‘버스정류장 뒤편’]은 금연 구역이다. 설문 결과, 암묵적으로 흡연의 장으로 통용되는 곳의 이용자가 많은 탓인지 금연 구역을 흡연 가능 구역으로 오인한 답변이 208개의 응답 중 73개로 약 35%를 차지했다. ‘건물 옥상들’이 흡연 구역임을 인식한 비율이 54%로 높았지만, 이에 비해 ‘대학 본부 옆 주차장’이 흡연 구역임을 인식한 비율은 11%로 비교적 낮았다. 특히 금연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자하관 입구’를 흡연 가능 구역이라고 선택한 비율이 14%, ‘버스정류장 뒤편’을 선택한 비율이 10%로, 두 장소를 흡연 가능 구역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상명대학교 내 공식적으로 규정된 흡연 구역은 어디인가요?’ 설문 결과] 자하관 쪽에 위치한 암묵적 흡연의 장은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타학생에게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실제로 “거기서 담배 피우면 냄새 다 들어옵니다. 담배충 소리 듣기 싫으면 규정 지켜주세요.”와 같이 학교 커뮤니티에서 흡연으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는 목소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비흡연자들이 흡연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부 흡연자들이 암묵적 흡연의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명대학교 내 흡연 문화를 고찰하고,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의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흡연 구역까지 가기 귀찮아서, 금연 구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앞서 언급된, 암묵적 흡연의 장 대부분에는 금연 구역이라는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그곳이 금연 구역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번거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곳을 찾는 것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중복 선택 가능)에 따르면, 참여자 중 약 50%의 응답자가 냄새로 인한 피해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다음으로 부정적 분위기 형성이 약 16%를 시각각적 불편함이 약 15%를 차지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 구역에서 흡연을 하는 것은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 받을 수 있는 위법 행위이다. 상명대학교 내의 적지 않은 인원이 비난받아 마땅한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내 흡연자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감수하고, 위법 행위를 행하면서까지 암묵적 흡연의 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상명대학교 경사 아시잖아요. 매번 옥상까지 가는 건 너무 힘들어요. 속된 말로 고산병에 걸릴 것만 같습니다” 상명대학교는 지리적 특성상 정문부터 후문까지 높은 경사를 띄고 있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지상 흡연 구역은 대학본부 옆 흙 주차장 하나가 존재한다. 하지만 위치상 학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외곽에 있기에 실질적인 활용이 적은 곳이다. 그렇기에 흡연자들은 학교의 높은 경사를 오른 후, 건물에 들어가 옥상까지 올라야 하는 실상이다. 상명대학교의 모든 건물이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지는 않기에 계단을 통해 올라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흡연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이기에 흡연자들이 많은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지만, 학교의 높은 경사에 굴복한 것이다. 실제로 인터뷰 대상자 중 비흡연자 일부는 “안 그래도 경사도 높은데 옥상까지 올라가는 흡연자 지인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라며 흡연자를 불쌍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여름에 올라가면 그늘이 거의 없어 정말 덥습니다. 각 옥상에 설치된 흡연 부스도 너무 협소해요.” 응답자의 말대로 학술정보관 외 다른 건물들의 옥상에는 그늘이 거의 없다. 물론 흡연 부스에는 그늘이 지지만, 각 옥상에 설치된 흡연 부스에 들어가 본 결과 성인 기준 3~4명이 들어가도 좁다고 느껴질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더라도 흡연 부스를 이용하지 않고, 그 밖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흡연 부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든 학교 내 사람들 모두가 만족하는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수가 인정할 만한 결론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의견을 종합하여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흡연 구역에 대한 명확한 홍보 활동 앞서 제시한 것처럼 적지 않은 수인 131명 중 73명이 금연 구역을 흡연 구역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 사태 전에는 흡연 구역으로 이용되었던 곳이 코로나를 겪으며 학교에 오지 않는 사이에 금연 구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도 학생들의 오해에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일차적으로 학교 측에서 흡연 구역에 대한 홍보와 통제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학교 내 흡연 구역에 대한 홍보 활동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접할 수 있었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교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디가 흡연 구역인지 알 수 없었어요. 자하관 입구 쪽에 금연 구역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재떨이도 있길래 금연 구역이었다가 흡연 구역으로 바뀐 곳인 줄 알고 거기서 흡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서야 에브리타임이라는 학교 커뮤니티 앱을 통해 옥상에 흡연 구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답변을 듣고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서 흡연에 대한 공지를 찾아보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하여 전화로 문의해 보았다. 우선, 학교 내 규정된 흡연 구역은 옥상 건물과 학생회관 뒤 흙 주차장이 맞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러한 규정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지 질문하자 “흡연 문제와 같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올리기 애매한 사항들은 각 학과 학회장에게 사항을 전달하여 이를 단체메시지 방에 공유되도록 하게 해요. 이번 년(2022년)5월에 각 학회장에게 흡연 관련해서 공문을 내렸었습니다.”라는 답변을 얻었다. 공문을 확인해본 결과, 학과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종로구청에 흡연으로 인해 접수된 민원을 언급하며 각 옥상들과 학생회관 뒤 흙 주차장에 위치한 흡연 구역을 활용하여 올바른 흡연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부 학과는 전달 과정에서 학교 측의 공문이 누락되었다. 학교 내에 설치된 지도들에 흡연 아이콘을 활용해 흡연 구역을 홍보하거나 추가로 올바른 흡연 문화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혼동을 낮추고, 학교에서 흡연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측에서 불법적으로 흡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제지를 가하는 것은 실질적 시행이 어려워 보이니, 애초에 그들의 발걸음이 규정된 장소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한 가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유동 인구가 적으며 접근성이 좋은 곳에 지상 흡연 구역 지정 흡연자, 비흡연자 두 집단에서 공통으로 나온 의견이 유동 인구가 적으며 접근성이 좋은 지상에 흡연 구역을 지정하자는 것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고, 접근성이 낮으면 실질적 사용률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상’을 요구하는 이유도 높은 언덕과 연계된 접근성으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참고하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탐색함을 통해 3곳을 선출해 보았다. 첫째,버스 정류장 뒤편과 중앙교수연구동 우측 사이 길목이다. 이곳은 정류장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는 이점이 있다. 더불어 나무와 벽 등으로 가림막 수단이 존재한다. 둘째,밀레니엄관 뒤 주차장 끝 쪽이다. 이곳 역시 중앙도서관과 에스컬레이터에 가깝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이점이 있다. 나무들이 있어 건물과 어느 정도 분리는 되어있다. 셋째,생활예술관 앞 주차장 끝 쪽이다. 근처에 위치한 건물이 많아 접근성이 좋다. 아래 길목과 높낮이 차이가 있고 나무들이 있으며 구석으로 향할수록 건물들과 어느 정도 거리 유지가 가능하다. 선정된 3곳은 나무나 벽 등 가림막 수단이 존재하지만 완벽하게 간접흡연 위험성을 차단할 수는 없기에 추가적인 가림막이나 흡연 부스 등의 설치가 필수적이다. [선출된 지상 흡연 구역 후보들의 모습] (1) 버스 정류장 뒤편과 중앙 교수연구동 우측 사이 길목 (2) 밀레니엄관 뒤 주차장 끝 쪽 (3) 생활예술관 앞 주차장 끝 쪽 학교 곳곳에서는 금연 구역이라는 안내문 앞에서 많은 사람이 흡연을 하고 있고, 또 그 옆에는 재떨이가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목격한 필자는 교내 흡연 문화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느껴 흡연 실태를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최대한으로 다양한 의견을 모아보았다. 필자가 목격한 대로 학교 내에서는 규정을 어긴 흡연 행위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규정을 어기고 법을 어긴 자들이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았을 때, 오로지 이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흡연 구역을 홍보하여 학교 내 사람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지상에 부족한 흡연 구역을 늘리는 방안을 도출해 보았다. 흡연으로 인한 갈등은 상명대학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기 위해 모두가 한 발짝씩만 양보한다면 현재보다 더 많은 이들이 만족하는 흡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메인사진 _ https://smartstore.naver.com/bnmshopping/products/8152807432?NaPm=ct%3Dlfgnvaig%7Cci%3D72c3df472d54d62398901e221ef23eec5278d1a1%7Ctr%3Dimg%7Csn%3D2560179%7Chk%3D21325cdb64ed95dad2c0f804cb999b7199eb0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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